갑작스런 시심에 밤 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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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이 되면
- 38살 어느 아침에
이 우 완
늘어나는 뱃살이 배꼽을 덮어가는
불혹이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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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뛰놀던 언덕에 돌아가
작은 우주 하나 만들어볼까
소 끄는 견우가 되었다가
해거름녘엔 밀짚모자 벗어 먼지도 털어볼까
소 마리나 사고 땅도 사서
왔던 곳으로 돌아가 그 시절처럼 살았으면......
내 바라는 나의 우주는
넓지 않아도 좋으리
내 부르면 어디서든 아내와 아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면 좋으리
그래도 아내와 아이를 부를 땐
있는 목청껏 불러야지 하는 욕심이 생긴다네
흙과 나무로 지을 집은
세 칸이면 족하지만
울타리 없는 마당만은
잔디 욕심을 부리고 싶네
아내는 뱀이 무섭다하겠지만
어디 뱀이 대수랴
뱀에게도 개구리에게도 방아깨비에게도
한 세상씩 떼어준다 해도
그 나머지 넓이만큼의 마당은
온전히 아내를 위한 세상이 될지니
좁은 마당만큼의 넓은 마음 안에
넓은 마음만큼의 작은 마당 안에
내 작은 우주를 관장하실 하느님이
아침 종달새 노래처럼 내려와 앉으리
아침 햇살이 졸린 눈을 들어
풀잎에 맺힌 이슬 잠을 깨울 때
쌀 씻은 예수도 밥을 푼 석가도 수운과 더불어
야외 식탁에 둘러 앉아 아침 식사를 맞으리
내가 소를 먹이고
텃밭을 가꾸는 동안
아내는 색색의 헝겊을 기워 갓난쟁이 양말을 짓고
틈틈이 큰 아이 녀석 공부를 봐줄 테지
몇 걸음 되지 않는 텃밭이지만
아내가 점심을 이고 와 준다면
지금껏 이 세상에서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우주로의 소풍을 떠나게 되리
아이들은 금방 커서
자신들의 세상을 찾아 떠날 테고
늙은 아내와 나, 우리들은
추억을 되씹기엔 아직 이르다하겠지
가축 배앓이 약으로 갈았다가
이랑 고랑 떼 지어 피어 있을 양귀비꽃
낼름거리는 뱀의 혀
불타는 듯한 그 양귀비 꽃을
갈라진 틈으로 풀물 깨나 들었을 손으로
몇 송이 꺾어 늙은 아내 머리맡에 놓아두면
늙은 아내는 ‘오메 단풍 들것네!’의 그 누이처럼
그 누이처럼 환하게 웃어 줄 테지
지금은 꿈일지라도
그렇게 나머지 반평생 살고 싶네
다 버리고 따라와 줄 아내를 위해
이름은 거창하게 지어 달아 둬야지
해 뜨는 아침의 땅
아 사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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