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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신경득 ! (끝)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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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이우완
    댓글 댓글 1건   조회Hit 2,444회   작성일Date 09-09-09 02:10

    본문

    교수님은 지난 8월에 정년퇴임을 하셨다. 제자들이 송별연을 열어 드렸다. 문집도 엮어 교수님께 봉정하였다. 50줄에 들어선 초로에서부터 파릇한 07학번까지, 교사에서부터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교수님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됨을 축하해드렸다.

    사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지도교수의 정년퇴임 때까지도 학위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송구함 때문에 교수님 앞에 나서기가 망설여져 교수님 바로 옆에 앉아 있었으면서도 ‘교수님, 우완입니다.’라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할 때 팔짱을 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교수님, 우완입니다.”

    라고 겨우 말할 수 있었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온 것을 아신 교수님께서는 반가움과 농담기가 묻어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어, 그래. 우완이 왔어? 너 논문 잘 썼더라.”

    아직 학위논문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한 핀잔과 문집에 실린 내 글에 대한 평가를 한꺼번에 하신 셈이었다.

     

    교수님은 퇴임을 하시면 지리산 자락에 아주 작은 문예창작 학교를 짓고 싶어 하셨다. 학교 지을 자리를 보신다기에 함양, 산청 등지로 모시고 다닌 적이 몇 번 있었다. 앞을 보시지 못해 연신 돌부리에 발을 찧으면서도 산 중턱까지 올라가셔서는 땅의 기운을 느낀다며 손바닥을 천천히 옆구리까지 올렸다가 내리곤 했었다. 산의 형세를 열심히 설명하는 나에게 학교가 완성되면 수위자리는 너에게 주마하고 농담 섞인 약속도 했더랬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가인 청주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 한다고 했다. 청주에서 교수님을 모시러 온 한 목사님은 인사말에서

    “진주의 보배를 청주로 모셔가게 되어 진주 분들에게는 죄송하다. 지리산 자락에 집이라도 지어놓고 모셔 가면 모를까 이제는 진주에 올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라며 교수님을 청주로 모셔가는 것을 기뻐했다.

     

    교수님은 호를 ‘아침나라’라고 쓰신다. 신경득 교수님다운 호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침나라 신경득 교수님을 어버이처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은 그 밤으로 교수님을 떠나보냈다. 청주까지 찾아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 뵐 수가 없을 것이므로 그 밤의 이별이 못내 아쉬웠다. 부디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해오시던 학문의 길에서도 더 큰 성과 있기를 바라며 이 긴 글을 끝낼까 한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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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완님의 댓글

    이우완 작성일 Date

    '신경득'이라는 이름자에 얽힌 일화 하나.

      국어교육과에 두 분의 독보적인 존재가 있었다. 려증동 교수님과 김수업 교수님이었다. 두 분 모두 그 분야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는 분이셨다. 그런데, 두 교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려증동 교수님은 학생회에서 붙여 둔 대자보가 마음에 안들면 손수 찢어버리는 아주 독단적인 보수주의자였다. 고집불통의 영감님이었다. 나도 그의 수업을 한 과목 수강했었는데, 마침 그 때 학생회장선거에 출마하게 되어 눈 밖에 나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F 학점을 받았다. 반면에 김수업 교수님은 학생들을 잘 이해해주시고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인 분이셨다. 진주 탈춤한마당 이라는 축제를 만드는데 공헌하셨고 총 책임을 맡아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40세의 신경득이 국어국문학과의 교수로 임용될 때 그 두 분의 교수님 앞에서 면접을 봤다고 한다. 한자로 씌어진 이름자를 놓고 려증동 교수가 풀이를 하더란다. 매울 (신), 벼슬 (경), 얻을 (득). 벼슬(경)을 얻기(득) 어렵다(신)는 뜻의 이름으로 풀이를 하더란다. 그때 옆에 있던 김수업 교수님은 그게 아니라 어려운(신) 벼슬(경)을 얻는다(득)는 뜻의 이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신경득 교수님은 국어국문학과의 교수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