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Y씨는 일주일째 목발을 짚고 있다. 오래 전부터 따라다니던 통풍으로 인해 무릎에 통증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이틀 정도에서 통증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그래서, 아예 목발을 짚고 일하러 다닌다.

저지난 주말에는 오랜 만에 경주로 가족 여행을 갔었는데, 통증이 도져서 여행지에서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고 국립경주박물관을 돌아보는 것으로써 천년고도 경주 여행을 마쳐야했다.

며칠 이러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심상찮다. 그렇다고 모처럼 따낸 수업을 포기할 수가 없어 Y씨는 목발을 짚고서라도 수업을 다니고 있다. 학교, 도서관, 학원, 과외....

보따리 장사라는 말 그대로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해야 하는 일인지라 보행이 불편한 Y씨로서는 자동차가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다행히 아픈 다리가 왼쪽이므로 운전에는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주차다. 걸어야 하는 거리를 최대한 단축해야하므로 건물입구에 가깝게 주차해야 한다. 그러자면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을 이용해야 한다.

Y씨의 자가용은 장애인 표시차량이 아니다. 그러나 Y씨는 현재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Y씨의 장애인전용주차 구역 주차는 불법인가? 관련법을 찾아보니 불법이다.

관련법에서는 장애인 표시가 없는 차량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 표시차량이더라도 보행에 불편이 있는 자가 탑승하지 않은 차량도 불법이라 한다. 그러나, 단속을 한다는 사람들은 장애인 표시차량인지의 여부만 살핀다. 어떤 사람이 탑승했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자동차가 없는 장애인 이웃을 태우고 함께 마트에 간 K씨는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없다. 만삭의 아내를 태우고 관공서를 찾은 P씨는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없다. 다리 골절로 깁스를 한 H씨는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에 주차하면 5분 안에 '차 빼주세요'하는 전화가 오거나 심하면 벌금 딱지를 떼인다.

시골에 사는 처할아버지가 장애인이라 처할아버지와 공동명의로 차를 구입한 L씨는 혼자서 마트에 가도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있다. 장애가 있는 형님 차를 빌려 타고 관공서에 간 G씨는 장애가 없어도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자동차"가 장애인전용주차 구역에 주차되어 있으면 절대 단속하지 않는다. 바로 눈앞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도 단속하지 않는다.(관련법에서는 불법이지만 실제로 단속하지는 않는다)

장애인전용주차 구역 단속, "사람"을 기준으로 해야할까 "자동차"를 기준으로 해야할까? 현실은 "자동차"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자동차가 장앤가?

그럼, 다시 물어보자. Y씨의 자가용은 장애인 표시차량이 아니다. 그러나 Y씨는 현재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Y씨의 장애인전용주차 구역 주차는 불법인가?  그렇다. 여전히 불법이다. 왜냐면,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법은 그렇다치고, 당신의 생각은?